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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시

브뤼헐의 그림들로 보는「Musée des Beaux Arts」

by 성중 2020. 12. 18.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1555~1558년경)

 

 

 잔잔한 바다에 비추는 나른한 햇살, 여유롭지만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입니다. 평화로운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비극적인 제목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카루스는 어디 있고 뭐가 추락이라는 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

 

 이카루스는 날개를 달고 크레타 섬을 탈출하다가 바다에 떨어져 죽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입니다.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에게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아주면서 '너무 높이 날면 햇볕에 날개가 녹을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젖을 것이다.'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막상 하늘에 날아오른 이카루스는 처음 느껴보는 자유에 아버지의 조언을 깜빡 잊어버리고 태양 가까이 날아올라 결국 바다에 추락하고 맙니다.

 

이제 그림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락하는 이카루스

 

 

눈치채셨나요? 동그라미 친 곳을 보면 사람 발 같은 것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저것이 브뤼헐이 그려낸 추락하는 이카루스입니다. 신화 자체도 비극적이지만 이카루스가 빠지고 있는데 관심도 없는 주변 사람들과 평화로운 풍경이 그림을 한 층 더 비극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W. H. Auden (1907~1973)

 

 

 미국의 시인 W.H.오든은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Musée des Beaux Arts(미술 박물관)'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시의 기능이 사회의 병리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오든은 브뤼헐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고통과 인간의 위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Musée des Beaux Arts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고통에 관하여 그들은 결코 틀린 적이 없다.

늙은 거장들: 그들은 고통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가: 다른 사람들은 음식을 먹거나 창문을 열거나 단지 멍하니 걸어 다닐 동안 고통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어떻게, 나이 든 자들이 경건하고 열정적으로 기적의 탄생을 기다릴 때,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그 사건이 발생하기를 딱히 원치 않는 아이들이 항상 있었음에 틀림없었는가,

그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

끔찍한 순교가 어느 한 구석에서, 개들의 삶을 살아가고 고문관의 말이 그의 순결한 엉덩이를 나무 뒤에다 박박 긁는 어떤 지저분한 곳에서, 어떻게든 반드시 일어나고 있음을

In Breu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ugh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ly on

예를 들어, 브뤼헐의 이카루스를 보면, 어떻게 모든 것들이 재앙으로부터 상당히 여유롭게 뒤바뀌는가; 농부는 첨벙 대는 소리, 버림받은 그 외침 소리를 들었을 텐데.

하지만 그 농부에게 그것은 중요치 않은 실패였을 뿐; 태양은 이 전에 빛났어야만 했던 것과 같이 푸른빛 물속으로 사라지는 하얀 다리 위로 내리쬐고 있었으며, 값 비싸고 고상한 유람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년, 분명히 놀라운 것을 봤음에 틀림없었지만, 도달해야 할 어딘가가 있었고 계속해서 차분히 항해하였다.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566), <베들레헴의 영아학살> (1565~1567년경)

 

 

 화자가 미술관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늙은 거장들(The old Masters)'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화가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고통이 인간에게 있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됩니다. 1연에서는 브뤼헐의 두 가지 작품을 더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의 탄생(the miraculous birth)'은 예수의 탄생으로 '어떻게, 나이든 자들이 경건하고 열정적으로 기적의 탄생을 기다릴 때,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그 사건이 발생하기를 딱히 원치 않는 아이들이 항상 있었음에 틀림없었는가'라는 표현을 볼 때 예수의 탄생이 이루어지던 순간에도 아이들은 근처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브뤼헐의 작품인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그림에서도 한쪽에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한 혹독한 인구 조사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근처에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근처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습니다. '끔찍한 순교(the dreadful martyrdom)'는 브뤼헐의 또 다른 그림인 <베들레헴의 영아학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그림에서도 영아들이 학살당하는 와중에 근처 동물들은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2연에서는 처음에 봤던 그림인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을 다룹니다. 농부(the ploughman)는 아까도 봤듯이 이카루스가 떨어지던 말던 그냥 지나가고 있고 태양(the sun)도 변함없이 햇빛을 쬐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값 비싸고 고상한 유람선(the expensive delicate ship)도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서 그저 항해할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은 고통의 대비입니다. 브뤼헐의 그림들도 계속해서 한 쪽의 고통과 다른 한 편에 그 고통에 냉담한 자들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무심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세상의 모든 고통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으며 누구나 고통을 느끼는 이카루스나 고통을 외면하는 농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가'.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 모두 제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며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기쁨을, 혹은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있는 요즘은 가끔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나 자신도 컨트롤 못하는데 누구를 신경 쓰냐며 내 기쁨과 고통에 허우적거립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안부 전화를 걸면 저를 반겨줍니다. 그냥 그곳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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