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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시

「The Emperor of Ice-Cream」을 통해서 본 낙관적 허무주의

by 성중 2020. 11. 29.

 

 

 

 

 

Wallace Stevens(1879~1955)

 

 

 

 

 Wallace Stevens의 시 'The Emperor of Ice-Cream'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특별한 관점을 제시해줍니다. 여러분도 아마 장례식을 한 번쯤 방문해 보셨을 겁니다. 그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기억하시나요? 

 

하지만 이 시에서는 담담하고 일상적인 장례식이 펼쳐집니다.

 

The Emperor of Ice-Cream

Call the roller of big cigars,
The muscular one, and bid him whip
In kitchen cups concupiscent curds.
Let the wenches dawdle in such dress
As they are used to wear, and let the boys
Bring flowers in last month's newspapers.
Let be be finale of see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Take from the dresser of deal.
Lacking the three glass knobs, that sheet
On which she embroidered fantails once
And spread it so as to cover her face.
If her horny feet protrude, they come
To show how cold she is, and dumb.
Let the lamp affix its bea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큰 담배를 마는 자를 불러라,
힘이 센 놈으로, 그리고 휘젓게 하라
부엌 컵에 들어있는 탐욕스러운 응유를.
소녀들이 항상 입고 있던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채
빈둥거리게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소년들은
지난달의 신문지로 감싼 꽃을 가지고 오도록 하라.
현존이 현상의 끝이 되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뿐이니.

널빤지로 만든 화장대에서 꺼내라.
유리 손잡이 세 개가 모자란,
그녀가 한때 공장 비둘기를 수놓았던 그 천을 꺼내,
그것을 펼쳐, 그녀의 얼굴을 덮어라.
그녀의 거친 발이 빠져나오면, 그들은
그녀가 얼마나 차가운지, 말도 못 할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등불이 비추어지게끔 달아두어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뿐이니.

 뭔가 분주하고 나른한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작가가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끝이자 영원한 무의식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속성은 우리에게 존재론적 공포감과 삶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선입견과 1차원적인 해석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보면 작가의 의도가 보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달콤한 이 순간이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설정하는 삶의 목적입니다. 죽음은 허무한 것이 맞지만 이에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스크림 황제(The Emperor of Ice-Cream)

 

 

 

 

 

 

 

 

 한 장례식이 있습니다. 엄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대접할 아이스크림 준비로 부산합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장례식의 모습과 많이 달라 독자들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장례식 하면 엄숙한 분위기에서 격식을 갖추고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이 시에서는 담배를 피던 자를 불러 엉긴 우유를 휘젓게 하고 소녀들은 옆에서 빈둥거리고 있으며 소년들이 잔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Wallace Stevens는 시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묘사합니다. 작가가 죽음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지만  2연에서는 여성의 죽음이 진중하게 묘사됩니다. 'If her horny feet protrude, they come'을 보면 그녀의 발이 거칠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그녀가 평범한 서민 계층임을 암시합니다. 'To show how cold she is, and dumb.' 그녀가 차갑고, 말이 없다는 묘사는 죽음의 냉혹함과 더 이상 자의식이 없어지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허무주의

 

 

 

 

 우리는 이런 죽음의 냉혹함을 통해 허무주의와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인간의 유한성, 죽음 이후의 영원한 무의식 등에서 개개인의 삶 자체에 회의감, 혹은 존재론적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인류는 우주 137억 년 역사에 잠깐 스쳐가는 존재일 뿐이며 존재에 필연성 또한 없습니다. 짧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길지도 않은 수명을 가진 우리는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한 이런 고민을 하며 심한 경우 모든 게 부질없다는 비관적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림

 

 

 

 

 이런 죽음에 대한 진중한 관점으로 시에 돌아와 보면 장례식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더욱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묘사와 동시에 이를 가볍게 다루는 것은 아이러니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시의 핵심적인 소재인 '아이스크림'의 의미를 이해하면 설명이 됩니다.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고 언젠가 녹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행복이 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즉, 아이스크림은 현존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이라는 문장도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화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Let be be finale of seem'이라는 표현 또한 '현존이 현상의 끝이 되게 하라.'로 해석이 가능하며 존재가치를 현재에 두는 태도를 함축합니다.

낙관적 허무주의(Optimistic Nihilism)

 

 

 

 

낙관적 허무주의(출처: Kurzgesagt – In a Nutshell)

 

 

 

 

 '낙관적 허무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삶은 유한하고 인류의 존재 의의는 불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에 낙관적으로 발상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인생에서 경험하는 전부라면 오직 그 순간만이 중요합니다. 즉, 아이스크림이 녹는다고 걱정하기보단 그 순간의 달콤함에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더 확장해 인류 존재에 목적이 없다면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목적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죽음에 담담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작가의 의도는 일상적인 장례를 통해,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통해 죽음에 얽매이기보단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게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황제(emperor)는 지배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즉, 아이스크림의 속성인 현존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유일한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허무주의에 빠지면 반대로 죽음에게 우리의 삶이 지배당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의 빛나는 현재까지 잠식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낙관적 허무주의의 관점으로 죽음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면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반대로 지배하면서 우리 삶의 목적을 주체적으로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Wallace Stevens의 시 'The Emperor of Ice-Cream'은 일상적인 장례식의 풍경과 아이스크림의 단순한 상징성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현존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존재에 대한 회의감은 우리를 허무주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지배당해 우울하고 무미건조하게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존재의 의미를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면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결국 현존한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삶이 유한하기에 현존에서 얻는 경험들이 더 값지고 아름답다는 '낙관적 허무주의'의 관점에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결국 장례식에서의 화자의 담담한 태도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인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시에 대한 1차원적 해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시적 상황과 태도, 상징들은 아이스크림의 황제라는 키워드로 차례차례 풀려나갑니다. 죽음에 대한 독특한 관점과 더불어 이면의 해석을 요구하는 심오한 전개 방식은 낙관적 허무주의의 신념을 담고 있으며 시에 문학적 가치를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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