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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융 심리학으로 본 현대사회의 신경증

by 성중 2020. 12. 24.

 현대 기술의 집약체인 스마트폰도 웬만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와는 별개로 만연한 우울증, 극단적 개인주의, 그리고 자아를 잃어버린 이들은 이성적 사고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왜 누군가는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릴까요?

 


 

 

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융은 프로이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분석심리학계에 독자적인 이론을 개척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융의 심리학에 대한 원형적 통찰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융 심리학의 이론 중에서 무의식의 원형(Archetype)을 요약한 텍스트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화는 본질적으로 무의식적 형태인 원형을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융은 그 원형이 개인의 꿈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꿈은 '개인화된 신화'이고 신화는 '보편적인 꿈'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런 식으로, 그가 말하는 바는 인류학적이라기보단 심리적인 것이지만, 그의 많은 연구들은 프레이저 등의 학자들과 많이 겹친다. 하지만 융은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이 단순히 파생적이거나 부차적인 인물이 아니며 신화 비평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그는 신화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쓰는 용어들을 제공했다. '원형(Archetype)'이라는 용어는 융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향력 때문에 신학 비평가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프로이트처럼 그는 인간 내면의 어두컴컴한 침체를 탐험하는 우리의 길을 밝혀주는 눈부신 통찰의 선구자였다. 그 중요한 공헌은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로 명명된 원형과 관련한 융의 개별화(Individuation) 이론이다. 개별화는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개인을 같은 종의 다른 이들과 구별해주는 자아의 측면들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인식의 과정이다 - 즉, 성숙해지면서 개인은 의식적으로 다양한 측면,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총체적으로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의식에는 상당한 용기와 솔직함이 필요하지만 균형 있는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융은 신경증(Neurosis)이란 개인이 자신의 무의식적 요소를 마주하지 못하거나 원형적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결과라고 이론화한다.


(출처: Jungian Psychology and Its Archetypal insights)

 '원형(Archetype)'이란 쉽게 말해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뜻합니다. 대표적 원형으로는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아니무스 등이 있습니다. '그림자(Shadow)'란 본인 성격의 부정적인 부분과 같이 숨기고 싶은 불쾌한 요소들을 뜻하고 '페르소나(Persona)'는 사회생활을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뜻합니다. '아니마/아니무스(Anima/Animus)'는 남성 안의 여성성/ 여성 안의 남성성을 뜻합니다. 융은 이러한 무의식의 원형들이 개인의 꿈을 넘어 신화, 민담, 전설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융의 심리학은 우리가 정신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내면 인식의 과정, 개별화(Individuation)를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적 원형을 의식으로 끌어올리고 자신의 모든 측면을 받아들여 성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인화된 신화'로서 꿈으로 드러나는 원형은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꿈'으로 탈바꿈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별화를 위해 개인은 솔직하게, 무의식의 원형들을 발견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덧붙이면 문학 작품들이 이러한 성장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바라보는 신화적, 심리적 비평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다양한 원형들을 발견하게 해 주며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결핍일 수도 있고 페르소나, 아니마/아니무스, 또는 감추고 싶은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매개체가 꼭 문학일 필요는 없습니다. 만화, 영화, 넷플릭스 드라마든 간에  오늘날의 콘텐츠 홍수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그 안에서 무의식적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면, 사회 개개인이 내면의 결핍을 치유하며 삶을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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