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인공지능시대의 문학

by 성중 2020. 12. 2.

 인간보다 일을 잘하는 기계 덕분에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그에 따른 인간의 소외문제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더 나아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등장하여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졌던 각종 지적 영역의 일까지 위협 당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

 

 

 <제2의 기계시대>의 저자는 2012년에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승하고 묘한 기분에 빠졌다고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어느 누구도 컴퓨터가 자동차를 몰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1년 애플은 자연의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 인터페이스 '시리'를 선보였습니다. 인간과 기계가 일상의 언어로 편리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움과 동시에 묘한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무어의 법칙을 뚫어버린 AI기술

 

 

 모든 변화는 2년마다 성능이 2배씩 증가한다는 반도체 기술이 낳은 고성능 하드웨어와 그에 이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의 획기적 발전에 따른 것입니다. 심지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AI는 매년 약 10배씩 무어 법칙 5배 이상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빅데이터 기술은 많은 데이터를 모델링할 수 있게 했고 그 정확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인공 신경망에 빅데이터가 결합한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은 컴퓨터가 스스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했고 인공지능(AI)을 탄생시켰습니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음악 데이터를 통해 음악 규칙과 조합을 학습하여 스스로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합니다. 19만 개 단어의 어휘력을 바탕으로 1분 만에 한 편의 시를 쓰고, 특정 화가의 화풍을 분석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며, 신문 기사 작성은 물론 영화 시나리오를 창작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문예사조는 시대의 흐름을 탄다고 배운 저는 '인공지능이 소설가를 대체하려는 지금, 인류 문예사조의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AI?

'그 날은 구름이 드리운 잔뜩 흐린 날이었다. 방 안은 언제나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씨는 그리 단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시시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토시(佐藤理史) 나고야(名古屋)대 교수가 개발한 소설 창작 AI, 즉 인공지능이 단어를 조합해 만들어낸 문장입니다. 사람이 썼다고 해도 별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2016년, 마쓰바라 진(松原仁) 공립 하코다테 미래(はこだて未來) 대(はこだて未來) 교수 연구팀은 '소설을 쓰는 AI 개발 프로젝트' 보고회를 도쿄에서 개최했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소설가 도노 쓰카사(東野司)는 "이만한 작품이 나올 줄 몰랐다. 이야기를 잘 반죽해 넣으면 대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SF작품을 쓰는 입장으로서 언젠가는 AI가 AI를 위한 소설을 쓰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에는 '시'분야까지 진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국에서 만든 인공지능 기반의 챗봇 '샤오이스'(Xiaoice)가 작성한 약 11만 편의 시 중 139편을 선정해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Sunshine Misses Windows)를 출간했습니다. 이 시집의 제목도 인공지능이 직접 지었습니다.

 

인공지능과 포스트모더니즘

 인공지능이 오늘날과 유사한 문학작품을 구사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상호 텍스트성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란 텍스트 간의 유기적 관련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① 모든 작가는 텍스트를 창작하는 사람이 되기에 앞서 먼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독자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한 텍스트는 그동안 저자가 읽어 온 여러 텍스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② 독자도 어느 한 텍스트를 읽을 때 여태까지 읽은 모든 텍스트들에 대한 기억을 총동원한다.라는 두 가지 전제 조건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모든 텍스트는 어디까지나 그 이전에 이미 존재해 잇던 것을 다시 재결합시켜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특징적으로 낭만주의나 모더니즘 전통에 속하는 작가들처럼 그들의 작품에서 독창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선배 작가들이나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자유롭게 의존하여 자신들의 작품을 집필하는 것을 중요한 창작적 원리로 삼고 있다"
- 김욱동 <포스트 모더니즘과 예술>中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상호 텍스트성은 인공지능의 작동원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주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내는 인공지능처럼 지금의 작가들도 기존의 지식들과 인터넷을 통해 나열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가들은 미디어 매체를 통해 폭발적으로 정보를 흡수하고, 독자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이야기를 증식해 왔습니다. AI가 쓴 문장이 사람이 쓴 것과 구별이 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 모두 존재하는 것을 바탕으로 글을 씀에도 인간만이 차원이 다른 철학이나 창의성을 보여주는 까닭은 '상상력'이라고 불리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가장 복잡한 형태의 의사소통이라는 인지 영역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 한 상호 텍스트적인 창작의 흐름이 인공지능에게 잠식당하는 지금, 예술사조는 조금 더 인간만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기술의 진보가 예술가들마저 거대한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지만, 인류가 그 책임을 다루는 지적인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해답을 찾아낼 것입니다.

 

 

참고문헌
-
제2의 기계시대,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 청림출판, 2014
- AI시대 속 한국문학, ‘창조하는 작가에서 배치하는 작가로의 이행, 김소륜, 현대소설 연구 제68호, 2017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 문학/예술/문화, 김욱동, 민음사, 1992
-포스트모더니즘과 예술, 김욱동, 청하, 1991
- 감성 건드리는 이 문장, AI가 썼다는데..., 이정헌 기자, 중앙일보, 2016.03.23
- 작가명 AI...스스로 소설 쓰는 인공지능 등장, 박영숙 세계 미래보고서 2018 저자, 뉴스 1, 2018. 11. 11
- 인공지능, ‘무어의 법칙’ 5~100배 속도로 성장, IT뉴스 2020. 07. 07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과 기술적 특이점  (0) 2023.03.27
융 심리학으로 본 현대사회의 신경증  (24) 2020.12.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