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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데미안(Demian) 필사

by 성중 2023. 1. 21.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1919) @illustimulus


누구나 이런 위기를 겪는다. 평범한 사람에게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욕구가 주변 세계와 가장 극심하게 부딪히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이때, 전 생애에서 딱 한 번,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그러니까 바로 우리의 운명을) 경험한다. 유년 시절이 공허해지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사랑했던 모든 것이 곁을 떠나려고 하면, 돌연 고독과 죽음처럼 치명적인 추위에 휩싸이는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잃어버린 낙원의 꿈(가장 악질적이고 잔인한 꿈)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여생을 보낸다. (p.78)

 

"우리 이 문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해 보자. 난 네가 사람들한테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아. 그 말은 네가 네 생각대로 인생 전부를 살지 못했다는 건데, 그건 좋지 않아. 삶에서 실제로 실행하는 생각만이 가치 있는 거야. 넌 이미 '공인된 세계'가 세계의 절반에 불과한 줄 알면서도, 신부님이나 선생님들이 하듯이 다른 절반의 세계는 숨겨 버리려고 애썼던 거야. 그건 숨겨지지 않아. 누구라도 일단 생각이 시작되면 말이야." (p.99)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p.152)

 

그러나 한편으론 다 부질없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누구든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 이 모두 부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뿐이었다.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 가지 뿐이다. 그가 설령 시인이나 미치광이나 예언자나 심지어 범죄자로 일생을 마친다 해도 좋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고 중대사도 아니다. 그의 임무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다. (p.206)

 

"순수한 연대는 아름다운 거야. 하지만 보이는 곳마다 도처에 만발하는 이런 것들은 전혀 연대가 아니야. 연대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탄생하고 한동안 세계를 바꿔 놓을 수 있는 거야." (p.219)

 

내면으로 들어가서 사는 일에 익숙해진 나머지 외부 세계는 내게 의미가 없다고, 유년기를 잃어버리면 세계의 밝은 빛도 잃어버리는 거라고, 사람은 영혼이 자유롭고 성숙해지는 대가로 이 사랑스러운 빛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체념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이 단지 파묻히고 어둠에 덮였을 뿐이어서, 유년기의 행복에서 벗어나고 포기했던 사람도 이 세계가 빛나는 것을 보고 아이의 시선으로 내적인 전율을 맛볼 수 있음을 황홀하게 느꼈다. (p. 224)

 

그녀는 별에 반한 청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바닷가에 서서 별에 손을 뻗치고, 별에 예배하고, 별의 꿈을 꾸고, 모든 생각을 별에 쏟았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이 별을 끌어안을 수 없음을 알았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뤄질 희망 없이 별을 사랑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고, 이런 생각에서 체념의 시를, 자신을 향상시키고 정화시키는 침묵과 끈질긴 고통에 대한 시를 한 편 완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꿈들은 별만을 향했다. 그는 또다시 바닷가의 높은 벼랑 위에 서서 별을 향한 사랑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동경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는 별을 향해 허공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도약의 순간, 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그의 마음에 스쳐 지나갔다.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인데!" 그는 바닷가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도약의 순간에 그가 소망이 이루어질 거라는 강한 신념을 가졌더라면, 그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 별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p.242)

 

붕대를 감는 것은 몹시 아팠다. 그 이후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가끔 열쇠를 발견해서 내 가장 깊은 곳으로,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형상들이 졸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굽혀 내 모습을 비춰 보았다. 이젠 완전히 내 친구, 나의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은 모습이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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