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예/소설

「멋진 신세계」유토피아의 허상

by 성중 2021. 1. 3.

 가상의 세계, 모든 아기들은 부화실에서 복제를 통해 태어나며 알파, 베타, 델타, 감마, 입실론의 계급으로 나뉘어 성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안정이며 철저한 세뇌를 받아 구성원들 모두 계급에 불만을 갖지 않고 살아갑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면 '소마'라고 불리는 약을 통해 정신적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죽을 때까지 신체를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동떨어진 곳은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불리며 격리되어 있습니다.

 

 

 

Brave New World (1932)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려낸 <멋진 신세계>입니다.

 

 어떤가요? 멋진 신세계의 구성원들은 모두 행복합니다. 하는 일의 차이가 있을 뿐 계급에 따른 차별도 없고 원하는 만큼의 쾌락과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완벽한 유토피아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것 같습니다. 생각의 방향이 통제된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개인의 '자유 의지'가 상실되어 있습니다. 가정, 정신적인 사랑 등등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가치들도 자연스레 빠져 있으며 '소마'라는 약으로 감정을 억제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뿐입니다.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1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고 싶으면 2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3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면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와 저쪽 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中

 

불행해질 권리

 신을 믿고, 가정을 이루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만인들은 문명 세계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사회의 일원이었지만 야만인 보호구역에 낙오된 '린다'에게 문명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야만인 '존'은 우연한 기회로 멋진 신세계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존은 얼마 안가 조작된 사회에 괴리감을 느끼고 멋진 신세계의 총통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가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들을 요구합니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존은 '불행해질 권리', 고통을 수반한 자유의지를 요구했지만 결국 외딴섬으로 떠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유토피아의 허상

 존의 입장을 그저 '공리(功利)를 극대화한 사회와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삶을 저울질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로 단순히 적응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존이 야만인 보호구역의 외부인이 아니라 멋진 신세계의 구성원이었다면 별다른 불만 없이 살아갔을 것입니다. 독자가 본능적으로 멋진 신세계에 거부감을 가지고 존의 입장에 공감이 가는 것도 우리가 야만인들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멋진 신세계에 더 공감이 가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작품의 문명세계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적응한 세계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공존

 

 

 두 번째로, 존이 자살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는 유토피아의 허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존은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랐지만 린다에게 문명세계의 영향을 받은, 어떻게 보면 중립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존은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즉, 행복을 바라보는 양극단의 세계는 모두 존에게 '완전한 행복'을 주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 'ou(없다)'와 'topos(장소)'를 합친 단어로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멋진 신세계>는 우리에게 '가치가 충돌하는 사회에서 이상향을 실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라고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유토피아의 실현은 과거에 사람들이 믿었던 것보다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 듯싶다. 그리고 우리들은 현재 "유토피아의 확실한 실현을 어떻게 피하느냐"하는 무척 고민스러운 문제에 직면했음을 느낀다. ···유토피아의 실현은 눈앞에 닥쳤다. 그리고 유토피아를 회피하는 길, '완벽'하면서 무척 자유로운 비이상향적인 사회로 되돌아갈 길을 지성인들과 교양인 계층이 모색하는 시대, 그런 새로운 한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 니콜라이 베르댜예프(Nikolai Berdyaev)

 

 

멋진 신세계
국내도서
저자 :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 이덕형역
출판 : 문예출판사 1998.10.20
상세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