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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설

「어린 왕자」사실 어른들의 이야기

by 성중 2020. 12. 9.

 

 

Le Petit Prince (1943)

 

 

 

프랑스 공군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입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 왕자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분명 동화책스러운 디자인과 삽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막상 읽으면 도무지 뭔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우연히 다시 접했던 어린 왕자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알게 모르게 철학을 담고 있는 어린 왕자는 사실 어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지금이야 너무 유명한 그림이 되어버려 모두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이상하게 찌그러진 모자로 보이는 그림입니다. 물론 이 그림이 당장 모자로 보이는가 보아뱀으로 보이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상징하는 바이자 어린 왕자의 주제인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른들은 숫자만 좋아한다

 "어른들은 숫자만 좋아한다." 어린 왕자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대학 강의에서 어린 왕자에 대한 수업을 듣던 중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벽을 따라 담쟁이덩굴이 올라가고 발코니에 각종 꽃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있고.. 이런 설명보다는 몇 억 짜리 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곧바로 반응을 보인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니 쉽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떤 대학에 합격하고 어떤 자격증이 필요하고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따지면서 정작 나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린 왕자가 지구까지 오며 지나온 별들은 모두 자기 존재 이유를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수함을 잃고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6명의 이상한 사람들을 통해 사회에서 만났을, 혹은 반드시 만나게 될 6가지 유형의 사람들과 동시에 나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별: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권위적인 임금님

 신하도 없고 별에 자기 혼자 있는데 왕이라고 합니다. 작중에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지만 권위의 자리에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학교든 가정이든 작은 모임이든 간에.. 저도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 별: 자기를 칭찬해주는 말만 듣는 허영심 많은 남자

 존재 이유가 결핍되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만을 원하는 남자입니다. 허영심에 빠져 건설적인 비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저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별: 술을 마시기 때문에 부끄럽고 부끄럽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술꾼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입니다. 사회의 부정적 시선과 그로 인한 외적 가치에의 집착의 악순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 빠져 살았던 중학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네 번째 별: 단지 소유만 하려고 부자가 되려는 사업가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과 물질 만능주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도 생각이 나는 대목입니다.

 

다섯 번째 별: 명령에 따라서만 가로등을 껐다 다시 켰다 하는 사람

 시키면 하는 삶입니다. 제도에 의해 사물화 된 사람들을 상징하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작중에서 어린 왕자가 유일하게 '그래도 이 사람은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라고 평가합니다.

 

여섯 번째 별: 이론에만 빠져 사는 고지식한 지리학자

 실제 산이나 바다를 가본 적 없고 책으로만 보는 지리학자입니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말로 때우는, 누가 하는 말이나 인터넷 댓글 한 두 개로 판단을 내려 버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유형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별, 지구를 어린 왕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지구는 기존의 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111명의 왕들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흑인 왕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또한 7천 명의 지리학자와 90만 명의 사업가들과, 750만 명의 술꾼들, 그리고 3억 1100만 명의 허영심쟁이들을 포함해 인구만 20억에 달하는 큰 별이었다.'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린 왕자는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에 떨어지고 불시착한 조종사와 만나게 됩니다. 사막은 허영심에 빠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조종사가 진정한 자아(어린 왕자)를 만나는 장소인 것입니다. 조종사의 그림을 보고 한눈에 보아뱀인 것을 알아차리는 어린 왕자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공감을 보여줍니다. 화가를 꿈꾸었던 어린 소년에게 기술이나 배우라고 했던 어른들의 세계, 그 속에서 어른들의 논리에 설득당해 본인도 그들 중 한 명으로 살아온 조종사가 사막이라는 동떨어진 공간에서 어린 시절의 자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 왕자가 여행하면서 만난 6명의 이상한 사람들은 조종사가 어른들의 세계를 살아가며 만났던 여러 사람들일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최근 1~2년 동안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시기에 우연히 수업에서 만났던 어린 왕자는 저에게 의미가 컸습니다. 어른들의 세계는 끊임없이 본질이 아닌 껍데기에 집중합니다. 물론 껍데기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 보면 생각보다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장 고등학교 때 삶의 전부일 것 같았던 대학 합격도 지금 보면 작게만 느껴지는 것처럼,  앞으로도 삶의 많은 껍데기가 벗겨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껍데기를 얻기 위해 달려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잠시 멈춰서, 한 번쯤은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가 무엇인지 보라는 것이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왕자
국내도서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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